문학방 가을모임 연 무지개 농장 김주경 대표
대추 농장에서 익어가는 시(詩), 외교관 농부의 인생 2막
가을이 깊어가는 지난 20일, 루선밸리의 밤은 특별했다. 뜨거운 햇볕 아래 영글어가는 대추들 사이로 사람 냄새가 감도는 ‘문학방 가을모임’이 열렸기 때문이다. 세계한인이커머스협회 산하 문학분과 회원들이 소나무 그늘 아래로 삼삼오오 모여든 이곳은 ‘무지개 대추농원’. 그리고 이 특별한 밤의 호스트는 농장의 주인이자 문학방의 분과위원장인 김주경(70) 대표였다.
온라인에서 시와 삶을 나누던 이들이 흙냄새 가득한 오프라인 공간에서 만난 것은 작년에 이어 두 번째. 풍성한 대추밭의 정취와 캠프파이어의 낭만 속에서 한가한 가을 저녁이 펼쳐졌다.
외교관, 시인, 화가, 그리고 이제는 8년 차 베테랑 농부로 살아 온 김대표의 다채로운 이력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시와 같았다.
무지개 농장 김주경 대표해 질 녘 노을에 반해 농부가 되다
행정고시(23기) 출신으로 외교관의 길을 걷던 그는 87년 공직을 떠나 미국에 정착했다. 미술학도였던 감성은 시인으로 등단, 17년째 펜을 놓지 않았고 이젤 위에는 마르지 않은 물감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 그가 전혀 다른 길인 ‘농부’의 삶을 택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파리 여행 중 만난 분의 추천으로 이곳에 잠시 들렀습니다. 그때 본 해 질 녘의 노을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그 풍경에 홀려 10에이커의 빈 땅을 덜컥 구입했죠.”
그렇게 시작된 농사였다. 농사의 ㄴ자도 모르고 시작했지만 이제는 700그루의 대추나무를 키우는 농장주가 되었다. 그에게 농장은 단순한 일터가 아닌, 시가 태어나는 흙이고 예술이 자라는 캔버스다. 그러나 “농장 일에 교회, 조합 일까지 1인 3역을 하느라 바빠서 그림은 이젤만 세워두고 손도 못 대고 있다”며 웃었다.
그의 공직생활의 경륜은 이제 흙 위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루선밸리 32개 대추 농장 중 27곳이 함께하는 대추조합의 총무를 맡아, 한동안 뜸했던 조합을 재건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는 것이다. 작년에는 조합 차원에서 USDA 가뭄 피해보조금을 신청해 농가에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의 현재 가장 큰 목표는 조합원들이 함께 쓸 수 있는 ‘공동 패킹 하우스’ 건립이다.
“루선밸리 대추는 풍부한 일조량 덕에 USDA 분석 결과로도 증명된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합니다. 당도가 월등하죠.”
그의 자부심은 허투루 나온 말이 아니다. 특히 그의 농원은 NRCS 시범 농장으로 지정될 만큼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다. 청결을 최우선으로 하여 사람 손으로만 수확하고, 자체 선별기와 건조 하우스를 갖춰 품질을 관리한다. “이런 고집 때문에 아내와 둘이 하기엔 벅차 농장 규모를 줄일까 고민”이라는 그의 말에 농부의 고단함이 느껴졌다.
모닥불이 타오르는 밤, 함께 앉은 아마추어 시인들의 이야기는 한없이 이어졌다. 시와 음악, 그리고 달콤한 대추가 어우러진 그 밤은 단순한 문학 모임이 아니었다. 곳곳에서 묵묵히 이민자의 삶을 가꿔온 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더불어 사는 희망을 꿈꾸는 저녁이었다. 루선밸리의 밤하늘 아래, 대추보다 더 달콤한 인생 이야기가 익어가고 있었다.
‘무지개 대추농원’ 정보
문의: (219) 229-0715
주소: 9125 Mesa Ave., Lucerne Valley, CA 9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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