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인물에 혼을 담다
[인터뷰] 애플밸리 거주 화가 제이 황
[코리안밸리 11월호]
애플밸리의 광활한 풍경 속에 한 예술가가 산다. 서양화가 제이 황(71). 지난달 10일 자택에서 만난 그는 겉보기엔 인자한 할아버지의 미소를 띠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태권도 5단의 강인함이 엿보인다. 시인이자 수필가, 세계태권도협회 해외지부장을 역임한 체육인. 이처럼 다채로운 이력은 그가 캔버스에 담아내는 인물들의 스토리를 더욱 빛나게 한다. 내년 2월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대통령 초상화 전시회 작업에 분주한 그를 만나 삶의 이력을 들어 보았다.
그가 인물화에 집중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인물화는 단순히 외모를 그리는 것 이상입니다. 그림 속 인물을 통해 우리의 삶과 경험을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죠."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인물화에 의미를 둔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인물화를 그리며 인물의 변화무쌍함에 매료됐다.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이 나타난다"는 그는 인물화를 '스토리를 그리는 것'이라 정의한다.
사진을 보고 그냥 따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인물에 대한 모든 자료를 찾아 본질을 공부하고 공통분모를 찾는다. "그림과 대화하면서 그린다"는 그의 작업 철학은 '털 하나를 다르게 그리면 다른 사람이 된다'는 '일호불사 편시타인(一毫不似 便時他人)'이라는 문구에 집약된다.
그의 인물화가 특별한 이유는 독창적인 '글레이징(겹쳐 그리기)' 기법에 있다. 20여 년 전 인물화의 대가 정형모 화백에게 사사받은 후, 그는 자신만의 기법을 개발했다. 유화와 세밀화의 장점을 모두 취해, 최소 15겹 이상을 겹쳐 그린다. "장점은 나중에 색깔이 숙성된다는 겁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연한 색이 배어 나와 묘한 색이 완성되죠." 이 기법은 그림에 시간의 깊이를 더한다.
그의 붓끝에서 수많은 인물이 되살아났다. 김지하 시인, 엄홍길 산악인, 정동환 배우부터 프란치스코 교황의 대형 유화(샌타애나 천주교교단 소장)까지. 2019년 예수님 초상화 발표회는 큰 찬사를 받았으며, 올 3월에는 미 국립인물화 박물관 영구 전시를 목적으로 한 이승만 대통령 인물화 발표회를 LA에서 열었다. 지난 9월에는 "한국인으로서 UN사무총장이 된 것이 귀한 일"이라며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반기문 전 총장의 초상화를 직접 전달했다(사진). 현재는 LAPD 역대 경찰청장들의 초상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전업 작가로 활동한 지 10여 년, 그의 예술 세계는 인물화를 넘어 확장 중이다. 대학 시절 '금당(필명)'이라는 이름으로 시집 '금당집'을 낸 시인이자 신동아에 수필을 기고한 문인으로서의 감수성은 '믹스트 미디어' 작업의 자양분이 되었다. 돌가루와 색소를 혼합해 독특한 질감을 만들며, '자연과 내가 일치된 개념'으로 순간적으로 그리는 추상화 '유니티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다. 인물화와 추상화를 병행하며, 어바인 시청과도 또 다른 전시를 협의 중이다.
2017년부터 거주한 애플밸리는 그에게 '산'으로 기억된다. 라스베가스에서 내려오던 중 15번 프리웨이 내리막길에서 펼쳐지는 산맥의 웅장함. 그 매력에 이끌려 자녀들이 사는 어바인과 이곳을 오가며 작업한다. "조용하고 한적해서" 이 지역을 선호한다는 그. 내년 2월, 프레지던트 데이를 맞아 그의 작품 12점이 워싱턴 DC에 걸린다. 트럼프를 포함한 5명의 대통령 인물화 전시다. "정치색은 없지만, 트럼프의 다양한 변화가 매력적"이라 말하는 노장의 예술가는 하이데저트의 고요 속에서 오늘도 캔버스 위 인물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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