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기적을 만나다

[김진송, 애나 70대 부부의 RV 생존 가이드]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 세대라면 누구나 한 번쯤 품어보는 로망이 있다. 집채만 한 RV(Recreational Vehicle)를 끌고 광활한 대륙을 누비는 꿈. 그 꿈은 늘 우리를 설레게 하고,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갈망을 자극한다. 지난 15일, 액튼(Acton)에서 만난 김진송, 애나 씨 부부는 그 꿈을 현실로, 그것도 아주 치열하게 살아낸 ‘풀타임 알비어(Full-time RVer: RV를 집 삼아 사는 사람)’였다.

인터뷰 내내 그들의 입에서는 찬송가 구절이 흥얼거림처럼 흘러나왔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스웨덴 시인 칼 보버그의 시에 곡을 붙인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How Great Thou Art)’.  빌리 그레이엄 전도 집회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게 된 이 찬양은 부부에게 단순한 노래가 아니었다. 그것은 길 위에서 매일 마주하는 장엄한 풍광에 대한 고백이자, 삶을 지탱해 준 신앙의 간증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RV 여행이 처음부터 낭만적인 은퇴의 꿈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여행의 서막은 비장했다. 아내 애나 씨가 뇌종양과 갑상선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은 직후였기 때문이다. 수술을 마친 그녀는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Chemotherapy) 대신 길 위의 삶을 택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병원 침대가 아니라 길 위에서 죽겠다”는 각오였다.

2007년, 토요타 세코이아 SUV로 시작된 여정은 10피트, 21피트, 29피트 트래블 트레일러를 거쳐, 마침내 40피트 대형 디젤 모터홈(티핀 모델)으로 이어졌다. 침대 2개와 화장실 2개를 갖춘 ‘움직이는 집’에서 그들은 2017년부터 2024년까지 7년을 꼬박 길 위에서 살았다. 그리고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매일 이름 모를 트레일을 걷고, 숲의 맑은 공기를 마시는 사이 암세포가 힘을 잃고 사라진 것이다. 자연이, 그리고 그 자연을 지으신 분이 주신 치유의 선물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들의 여정이 낭만적인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부는 RV 여행의 경제학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가장 큰 지출 항목인 숙박비는 ‘사우전드 트레일(Thousand Trails)’ 멤버십으로 해결했다. “목돈이 들지만, 평생 회원권을 구입하면 전국의 제휴 캠핑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1년만 부지런히 다녀도 본전을 뽑고도 남습니다. 식비요? 사실 집에서 먹나 길에서 먹나 비슷합니다.”
한국인 특유의 ‘김치 집착’도 길 위에서는 유연해졌다. 처음엔 바리바리 싸 들고 다녔지만, 이제는 현지 마트에서 배추(Chinese Cabbage)를 사서 즉석에서 버무려 먹는다. 오히려 무거운 김치통 대신 가벼운 양념류를 챙겨 다니며 현지 식재료로 샐러드처럼 즐기는 여유가 생겼다.

RV 구입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부부는 단호하게 조언했다. “절대 새 차를 사지 마세요. 2~3년 된 중고차, 마일리지는 3만 마일 이하인 것이 가장 경제적입니다. 새 차는 좋아 보여도 막상 길에 나오면 덜컹거리며 자리를 잡느라 2~3년간은 온갖 고장이 납니다. 차라리 전 주인이 초기 결함을 다 고쳐놓은 중고차가 속 편합니다.”

내비게이션 맹신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았다. 미국의 광활한 대지에는 여전히 전파가 닿지 않는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종이 지도와 A4 용지에 직접 그린 약도를 확인하며, 해가 떨어지기 전에 반드시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 하루 운전량을 250마일로 제한하는 것. 이것은 부부가 그동안 무사고로 여행할 수 있었던 철칙이다.

최근의 여행 트렌드 변화에 대한 우려도 덧붙였다. 낭만만 좇아 무작정 떠나기엔 환경이 많이 변했다. 특히 올해해부터 국립공원 예약 시스템이 더욱 까다로워졌다. 인기 있는 국립공원은 해외 여행자(비거주자)에게 1인당 100달러에 달하는 추가 입장료를 부과하거나, 예약 경쟁이 치열해져 예전처럼 ‘선착순 입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전기와 수도 서비스가 없는 ‘분다킹(Boondocking)’을 즐기는 이들도 있지만, 부부는 안전과 편의를 위해 미리 예약된 RV 파크를 이용할 것을 권했다.

“집이요? 집에서 리모컨만 끼고 사는 삶이 행복할까요? 우리 부부는 집을 나가야 비로소 행복해지는 사람들입니다. 풀타임 알비어를 꿈꾼다면 과감하게 집을 정리하세요. 돌아갈 곳이 있으면 여행은 결국 ‘외출’에 그치고 맙니다.”

대화가 끝나갈 무렵 그들은 6070세대에게 뼈아픈 진실을 전했다. “앞으로 우리에게 남은 활동 기간은 길어야 10년입니다. 다리에 힘이 풀리기 전에 떠나야 합니다. 목사님들은 주일성수 걱정에 만류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지으신 아름다운 세계를 구석구석 누비며 감탄하는 것이야말로 창조주에 대한 최고의 예의가 아닐까요?”

알래스카의 빙하 앞에서, 옐로스톤의 간헐천 옆에서, 그들은 매일 새로운 예배를 드렸다. 여행은 단순히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풍경 속에 깃든 생명력을 호흡하며 내 안의 ‘나’를 다시 만나는 과정임을 김진송, 애나 부부는 온몸으로 증명해 보였다.

지금, 당신의 마음속에도 시동을 걸 때가 되었다. 집 걱정은 잊어라. 떠날 수 있을 때 떠나는 것, 그것이 바로 남은 생을 가장 뜨겁게 사랑하는 방법이다.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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